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,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.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남사할린 침공 (문단 편집) == 전쟁범죄 == * 마오카 [[우편]]전신국 집단 [[자살]] 사건 마오카가 함락된 8월 20일 오전, 마오카 우편전신국에서 교환원으로 근무하던 [[일본인]] 여성 9명이 [[청산가리]]로 집단 자살한 사건인데, 일본에서는 이를 스스로 선택한 자결이라며 전후에도 [[순직]]으로 인정하고 홋카이도 최북단 [[왓카나이]]에 이들을 기리는 비석을 세웠다. 게다가 이들 9인은 전후 [[야스쿠니 신사]]에 합사되었으며, 이들을 대상으로 한 극우 영화 <빙설의 문>이 만들어지기도 했다. 그러나, 실제로는 이들은 스스로 자결한 것이 아니라 [[일본군]]의 명령에 의해 강제로 자결한 것이라는 의혹은 1950년대 이래 꾸준히 제기되고 있다. 일본 극우에서는 자발적으로 한 선택이라고 강조하고 있지만, [[청산가리]]가 어디서 쉽게 구할 수 있는 물건이 아니기 때문에 의문이 남는다. 더군다나 [[사이판 전투]] 당시 만세 절벽 집단 자살이나 [[오키나와 전투]] 당시의 온갖 사례들을 보면 의심할 수 밖에 없는 정황이 있다. 애당초 왓카나이의 추모비문에도 처음에는 일본군의 지시로 자결했다는 문구가 있었으나 지시했다는 증거가 없다는 반론으로 해당 문구가 지워졌다. 사실 이 자살극에서 4명의 여성이 살아남았지만 이들은 생전 당시 정황에 대해 자세히 밝히지도, 이 사건에 대한 어떠한 기록도 남기지 않았다. * 사할린 한인 집단 [[학살]] [[대한민국]] 정부 산하 강제동원위원회가 확인한 사할린 한인 학살은 카미시스카 학살(19명)과 미즈호 학살(27명) 뿐이지만 추가적으로 한인학살이 있었다는 의혹은 계속해서 제기된다. 이는 당시 [[소련]] 측이 기록한 인구 통계 문서에서 1년여만에 한인 인구 수가 절반으로 급감한 것에서 기인하는데, 당시 소련은 이러한 인구 급감이 피난 내지 [[조선]]으로의 귀환에 의한 것도 있겠지만 전투과정에서 일본 측의 집단학살이 있을 것이라는 의심도 언급했다. 일제에 의한 대규모 학살이 실제로 존재했다면 단순히 [[식민지]]인이 아니라 엄연히 [[재일 외국인]], 법적으로 [[일본인]]이라고 볼 만한 사람들을 상대로 학살행위를 자행한 일본 제국의 만행이 여실히 드러난다. 다만 이러한 학살은 당시 소련군을 막느라 정신없던 일본군보다는 침공 직후 각 마을 단위별로 급히 소집된 자경단 등 [[준군사조직]]이 소련군의 침공에 대한 공포로 무자비하게 이뤄졌을 가능성이 있는데 공식적으로 확인된 카미시스카, 미즈호 학살이 바로 그러한 경우이다. 또한 소련군은 점령지에서의 [[학살]]과 [[강간]]으로 [[연합군에 의한 독일 점령 기간의 강간|악명 높았던 만큼]] 소련군의 전쟁범죄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. 이렇듯 퇴각하는 일본군에 의해 조직적인 학살이 이루어졌을 가능성이 제기되며, 점령군인 소련군의 학살 가능성 또한 존재한다.[[http://blogs.ildaro.com/1551|#]] [[분류:1945년 전투]][[분류:소련-일본 전쟁]]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-BY-NC-SA 2.0 KR으로 배포하고,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.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.캡챠저장미리보기